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문단 편집) ==== [[체포]] ==== [[1998년]] [[10월 17일]] 디스크 치료로 방문했던 [[런던]]의 한 병원에서 [[스페인]] 국민 살해 문제[* 반정부 인사들을 스페인 대사관으로 피신시킨 스페인-칠레 '''UN 외교관''' 카르멜로 소리아(Carmelo Soria, 1921~1976)를 DINA([[칠레]] 보안군)가 납치해서 고문하고 살해한 뒤 시체를 차에 태운 뒤 절벽에서 떨어뜨려 운하에 침몰시키고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으로 조작했다. 이를 근거로 '정의감이 넘치는' 한 판사와 검사가 수동적 속인주의를 근거로 피노체트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고 집행했다.]로 영국에서 체포되었다. 스페인의 가르손 판사가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협정과 유럽테러협약에 의거, 피노체트를 과거 집권 때 스페인 시민 등 9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하고 신병을 인도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영국 귀족원]][* 2009년 이전까지 영국은 귀족원(상원)이 대법원의 역할도 수행했다.]까지 갔다. 국제법상 중요한 판례로 꼽혀 국제법을 배우는 사람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건.[* 당시 전 세계의 인권운동가들은 사악한 국가 지도자들이 더 이상 자신이 조작한 법률 뒤로 숨을 수 없게 되는 선례가 생기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칠레]]의 좌파들도 "잘됐네. 이대로 영원히 [[칠레]]에 돌아오지 마라"라는 입장이 대다수였다. 다만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리카르도 라고스는 독재자를 우리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에 한탄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칠레]]에서 피노체트를 보호하고 있었던 다양한 보호막이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피노체트는 재임시절 한 일에 대해 국가원수로 한 행위로서 외교면제 중 물적면제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내세워 영국정부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스페인의 요구가 법적인 하자가 없음을 확인했고, 영국의 상원 5인 재판부 역시 피노체트가 면책특권을 갖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영국 상원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스페인 상원 재판부는 피노체트의 이의를 받아들여 결국 5인 재판부에서 인원을 추가하여 7인 재판부를 구성하고 피노체트를 심리한 끝에 피노체트가 [[치매]]라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피노체트의 귀국을 허용했다. 이에 잭 스트로 내무장관은 2000년 3월 피노체트를 석방한다.[* 이런 배경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피노체트의 [[칠레]]는 중립이었지만 개전초 아르헨티나군의 공습 출격을 영국에 알려준다거나 영국 전투기 폭격기 편대가 [[칠레]] 공군기지에 대기하도록 허용해 아르헨티나 공군전력을 분산한다거나 하는 등의 지원으로 영국이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이유로 피노체트와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은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블레어의 노동당 집권기에 체포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시 석방되었다. 독재 이후 1999년까지는 기독사회당,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사회당이 집권하던 시기이다. 두 당 모두 중도좌파 성향의 당이지만 군을 중심으로 하는 피노체트의 세력은 당시에도 막강한 권력을 유지 중이었고 군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큰 지지 세력을 보유 중이었다. 그 권력은 피노체트 사망까지도 이어지고 사망한 이후 현재까지도 그 유족들과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파일:external/gdb.rferl.org/4B02FC8D-F188-42FD-BDC6-F47A8FFCE96B_mw800_mh600.jpg]] 죽기 보름 전인 2006년 11월 25일 생일 때 [[파일:external/www.theage.com.au/knPINOCHET_narrowweb__300x430,0.jpg]] 손녀와 함께. 위아래 다 2006년 생일 때다. 이렇게 간신히 [[칠레]]로 돌아왔는데, [[휠체어]]에 2002년부터 앓고 있던 [[치매]]기까지 있던 그는 놀랍게도 휠체어가 고국의 땅에 닫자마자 [[종점의 기적|두 발로 걸어 일어서고 공항 활주로를 걸으며 모여 있던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참고로 피노체트는 저 기적(?)을 벌인지 1달도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생일 무렵에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대충 "내 인생이 끝날 무렵, 나는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고 무엇보다 조국을 사랑하며 칠레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칠레를 멸망에서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집권 기간에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